아프시다면서 병원엔 안 가신다는 엄마의 속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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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십 년 된 지병인 심장병과 더불어 여기저기 안 아픈 곳이 없으신 84살 우리 엄마.
귀가 잘 안 들리셔서 전화 통화를 해도 5분 이상은 안 넘어가는데, 그 짧은 시간에도 두서너 군데 아픈 곳을 얘기하십니다.
2-3개월에 한 번씩 큰 병원에 정기 검진을 받으러 가십니다.
며칠 전에 예약한 날짜가 돼서 병원에 가는 중에, 전부터 계속 아프다고 하신 곳을 다시 이야기하십니다.
동네 병원에서 약을 드시고 나아지셨던 곳이었는데, 다시 불편해지셨나 봅니다.
나도 일부러 하루 시간을 내서 가는 정기 검진 날이라, 그럼 아예 큰 병원에 갔다가 동네 병원까지 돌아오자고 말씀드렸습니다. 큰 병원엔 예약을 안 하면 그날 진찰도 못 받을 수 있으니까요. 게다가 동네 병원도 엄마의 오랜 단골 병원이라 엄마의 몸 상태를 잘 알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럼 엄마, 아예 동네 병원까지 돌아서 오지 뭐."
잠시 엄마의 침묵.
".....  아니다. 너 바쁜데 다음에 가지 뭐."
"어차피 오늘 일부러 시간을 낸 거니까 그냥 가."
"아니다. 어떡하면 덜 아픈 것도 같고 가끔 안 아플 때도 있고. 더 아파지면 그때 가지 뭐."

결국엔 동네 병원은 가지 않았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3년 전, 아버지가 돌아 가셨을 때 마음의 병이 신체의 고통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걸 엄마를 통해 확실히 알게 됐습니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몇 개월 후 엄마는 입.퇴원을 몇 차례나 반복하셨습니다.

병원에서 내린 결론은 '우울증'이었습니다.
밉든 곱든 60여 년을 함께 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 빈자리가 속쓰림이나 기운 떨어짐, 혹은 식욕 부진과 몸 여기저기의 통증으로 나타나 병원에 입원까지 하시게 된 것이지요.

남동생과 둘이 사시는 엄마는 낮엔 온종일 대화 상대 없이 혼자 계십니다.
그러다 보니 어디 한 군데 조금만 불편하면 계속 그 생각만 하다 보니 더 아픈 것 같고, 가만히 집에만 계시니 활력도 없고 그 외로움이 여기저기 아픈 것으로 표현되는 것 같습니다.
나의 3-40년 후를 엄마를 통해서 봅니다.

하지만 모시고 나가 바람을 쐬거나 식구들이 모여 시끌벅적해 지면 언제 아팠냐는 듯 식사 잘하시고 밝아지시는데, 다시 혼자 계시면 여지없이 아프시다고 하십니다.

아마도 외롭고 적적한 마음을 '아프다'로 표현하시는 듯싶습니다.
'아프니 병원 가야겠다'가 아니라 '외롭고 허전하니 집에 더 많이 오거라.'겠지요?
그 마음을 조금을 알 것도 같습니다.
다행히 요즘은 하루에 한 번씩 2-30분 정도 동네를 한 바퀴 걸으시며 운동을 하시지요.
쉬엄쉬엄 몇 번을 앉아 쉬시긴 하지만, 그 때문인지 다리에 힘도 많이 생기신 것 같고 얼굴도 훨씬 좋아지셨습니다.


동네 산책을 하시면서 주위 할머니들과도 친해지시면서 몸과 마음이 많이 편해지신 것 같아 좋습니다.
엄마를 위해서 겨울 없이 요즘 같은 날씨가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추워지면 못 다니실 테니까요.

엄마~
엄마가 좋아하시는 돼지고기 무쳤어.
아침에 잠깐 들를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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