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16년동안 애써 참아 왔건만....

반응형
4월 17일이면 남편과 제가 결혼한 지 16년이 됩니다.
아이들 큰 걸 보면 세월이 흐르긴 흐른 것 같은데, 어느새 이렇게 됐나 놀랍기도 합니다.
20살에 처음 만나 알고 지낸 기간까지 20년이 넘으니, 이젠  ♪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이 노래를 아시나요?) ~~

결혼 생활이 10년이 넘으면서 권태기가 살짝 있기도 했는데(남편은 권태기 따윈 없다고 말할 테지만, 저는 있었어요 ㅜ), 시간이 지나니 지금은 오히려 신혼 때와 분위기가 비슷해진 것 같아요.
자주 아이들이 우리 부부의 행태를 보고 손발을 오그라뜨리거든요. ^^

결혼 생활을 시작하면서 제가 꼭 지키고 있는 것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에 남편 앞에서 절대 옷 갈아입지 않는 것과 방귀끼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눈곱이나 이 사이도 항상 조심하고 있구요.

2009/04/03 - [부지깽이 아이디어] - 우리집 찬장에 거울이 달린 이유는...

그.런.데.
결혼 생활 16년 만에 저에게는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처음 그 사실을 알았을 때는 정말 땅이 꺼지는 줄 알았어요.   다행히 앉아 있었기에 망정이지, 서 있는 상태였다면 드라마처럼 비틀~하며 벽이라도 짚었을지 모릅니다.

제가 술을 맛을 느끼며 마시기 시작한 건 3-4년 전입니다.
주로 저녁에 남편과 한두 잔 하는 정도지요.

얼마 전 어느 저녁, 그날도 가볍게 한잔하고 남편은 설거지 하고 저는 안방에 앉아 있었어요.  (평소에 남편은 설거지를 자주 합니다.   자신이 원해서 하는 건데, 깨끗이 설거지하고 있으면 기분이 좋다고 하네요.   제가 강제로 하라고 하는 적은 없습니다. ^^)
갑자기 남편이
"자기야, 자기 요새 가끔 잠잘 때 방귀 뀌더라. "
뭐,뭐시라!    방귀?     으아아아아아악~~~~

"뭐~~~어?   내가?"
"술 마신 날 가끔 뽕~~~ 뀌던데?  푸하하하하"

어떻게 저는 이런 식으로 술 주정(?)을 하는 걸까요?   방귀라니요.   20여 년을 잘 숨기고 살았는데, 술 먹고 방귀라니요. ㅜㅜ
그 상황에 남편과 얼굴을 마주 보고 있지 않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럽게 생각되던지요.

혹시 뽕이 아닌 부우우우웅은 아니었는지, 냄새는 안 났는지 차마 물어보지는 못했습니다.
"으악! 어떡해,어떡해.  내가 미쳤 나봐. 몰라, 몰라.  내가 못 살아. 이젠 술 안 마셔. 으아아악."
20년의 노력이 물거품이 돼버렸습니다.
좌절감과 창피함에 혼자 난리를 치고 있는데, 여전히 설거지 마무리 중인 남편의 한 마디
"자기야, 내가 자기를 진짜 사랑하는게 맞나봐.  자기가 방귀 뀌면 얼마나 귀여운지 몰라.  하하하하하."

아마 남편이 이 말을 안 해 주었다면 그날은 물론이고 며칠을 심하게 괴로워 했을 겁니다.
지금도 부끄러운 마음과 또 그 짓(?)을 할까 봐 잠에 빠지기 전에 방귀 안 뀌게 해 달라고 빌고 자기는 하지만, 말로라도 그렇게 말해 주니 조금 나은 것 같습니다.

어제도 술을 마셨는데, 제가 조용히 잤나 모르겠습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