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샘플이 남편에게 미치는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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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계획적인 일은 아니었어요.
단지 사용 중인 스킨과 로션이 다 떨어져, 그동안 모아 놓은 화장품 샘플을 썼던 겁니다.
지금 샘플을 사용하지 않고 다시 새로 정품을 사면, 그걸 다 쓸 때까지 샘플은 그대로 쌓여 있게 됩니다.
그래서 부지런히 사용하고 있었을 뿐이죠.

샘플을 써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몇 번 쓰고 나면 아직 남았어도 잘 나오지 않아요.
로션일 경우엔 거꾸로 세워두워도, 잘 안 나와 손바닥에 탁탁 쳐서 사용해야 합니다.
어느날은 유난히 잘 안나와서 열 번쯤 손바닥이 빨갛게 되도록 쳐서 쓰기도 합니다.

우리 남편, 딴에는 그런 제 모습이 마음에 걸렸나 봐요.
저의 뜻과는 전혀 다르게, 돈 아끼느라 정품 화장품을 안 사고 샘플을 얻어다 쓰는 줄로 알았나 봅니다.

어제 저녁, 성탄절 선물로 제 가방을 사주기로 했던 터라 인터넷에서 고르고 있는데, 화장품도 고르라고 합니다.
그것도 제가 쭉 사용해 오고 있는 서민스런 가격의 일반 화장품이 아닌, s*2라고 하는 고가의 기능성 화장품을 말이지요.
얼핏 들은 가격이 있는지라 됐다고 극구 사양해도, 샘플 고만 두들기고 빨리 고르라고 야단입니다.
샘플 다 쓰고 사려고 한 거라고 아무리 말을 해도 전부터 사주고 싶었다고 직접 검색까지 하네요.

헉스~
비싸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제가 필요한 기초 화장품 세트가 50만원이 넘게 적혀 있는 걸 보고, 저는 남편이 실망할까봐 그게 먼저 걱정스러웠습니다.
혹시 자신의 능력을 탓하며 자신감을 잃을까봐 얼른 둘러 댔습니다.
"아이구, 난 이 화장품 모델이 광고에서 '...발라봐" 하며 반말하는거 맘에 안 들었어.   그리고 이거 바른다고 예뻐질 자신도 없고.   이거 바르고 피부가 지금 그대로면 구박할 거잖아.   이거 싫어, 자기야."

티격 태격, 결국에는 다른 회사의 기초 세트를 s*2의 반 가격에(그것도 제가 쓰던 화장품보다는 비싸요..) 사고, 마사지 크림까지 더 얹어 사게 되었습니다.
그런 후 남편의 한 마디,
"내가 언젠간 꼭 s*2 풀 세트로 사줄 게.   그때까지 이 화장품은 계속 대 줄게.  한 2개월에 한 번씩 사면 되는 거지? 아끼지 말고 팍팍 발라."

정말 고맙고, 받는 만큼 해 주지 못하는 나의 못된 성격이 미안합니다.

한가지 더.
남편이 며칠 전 작은 사고로 허벅지를 몇 바늘 꿰맸어요.
응급실을 다녀온 그날 저녁, 평소 같으면 남편이 한 가지는 맡아서 하는데 다리 때문에 앉아만 있어야 했던 남편이 설거지 하랴, 세탁기에서 다 끝난 빨래 널랴 바쁜 저를 바라보며  한 말
"힘들지?   미안해. 같이 해야 하는데.   속상해 죽겠네.  바보같이 왜 다쳐가지고..."
".....ㅜㅜ"
그 날의 감격은 제 평생 가지고 갈 것 같습니다.

이 착한 남편을 어찌해야 할까요?





덧: 많은 분들이 이쁘게 봐주시고 기분좋은 댓글 많이 올려주셔서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
     한편으로는 자랑 아닌 자랑을 한 것 같아서 죄송하기도 하구요.
     댓글 올려주신 모든 분들 모두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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